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백일 전투 (문단 편집) === 9월 26일 === [[미국 원정군]] 총사령관 [[존 조지프 퍼싱]]을 필두로 한 미군과 [[앙리 구로우]]의 프랑스 제 4군이 공격을 시작했다([[뫼즈-아르곤 공세]]). 퍼싱은 공세를 계획할 때 독일군이 예비대로 전선을 채우기 전에 신속하게 전선을 돌파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미군은 첫번째 목표인 몽포콩 지역조차 장악하지 못하고 참담한 실패를 겪어야만 했다. 미군은 영프독과 달리 산개전을 선호했는데, 영프독은 산개전을 진작에 버린지 오래라는 것을 감안하면 아직까지 미군의 미숙함이 드러나는 부분. 결국 불균형하게 산개하여 따로따로 뭉친 미군 병력들은 독일군 포병대와 기관총의 주요 타깃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첫 목표지점인 몽포콩 지역은 독일군이 사수하는데 성공하였으며, 미군은 프랑스군의 진격에 힘입어 진격을 해야하는 상황이었다. 미군의 좌측에서 같이 공격하던 프랑스 제 4군 또한 고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미군 못지않게 상당한 전력을 제공받은 프랑스 제 4군은 종심전투에 충실한 공격을 펼쳐 고전하는 와중에 꾸역꾸역 진출, 하루만에 4km를 진격하고 독일군 포로 7,000명을 사로잡는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미군의 초기 돌파전이 사실상 실패함으로써 결국 포슈가 바라던 그림은 당분간 나오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더 자세한건 [[뫼즈-아르곤 공세]] 참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